40대 퇴사자로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저의 하루 일과 중 첫 번째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것인데요. 오늘 문득 '참 행복한 일상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단순히 쉬고 있어서가 아니더라고요. 마침 2 부류의 가정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좋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기에 3~5세 정도 되는 딸아이와 엄마가 산책길을 나서는 모습이었어요. 막 집앞을 나와 아이를 꼭 껴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아이 엄마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좋아!?"
엄마 목소리는 컸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아서 잘 들리지 않았어요. 저도 걸어가는 도중이라 뒷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아이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는 기억이 납니다. 모녀가 정답게 이야기 하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제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절대 볼 수 없었을 풍경입니다. 직장인이었다면 제가 가야 할 목적지로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달리듯 걸어가고 있었을 테니까요.
전에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은 참 평화롭습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가다가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자동차나 꽃, 개미를 실컷 볼 수 있고, 궁금해하는 질문에는 충분히 시간을 내서 설명을 해줄 수도 있죠. 일단 시간에 쫓긴다는 느낌이 없어 제가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봤던 아이엄마도 아이에게 이렇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해주었을 겁니다.
"아빠가 왔는데 왜 시큰둥 하니?
오늘 아이 하원길에는 또다른 가족을 봤어요. 한 부부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러 가려고 기다리고 있더군요. 아이 아빠는 아이를 기다리면서 연신 신이 났습니다. 딸아이였는데, 아이가 눈에 보이자마자 큰 동작으로 액션을 취하면서 반가움의 몸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린이집 선생님도 민망했는지, '아빠 왔는데 왜 그런 표정을 짓니?'라고 한마디 합니다.
남일 같지 않더군요. 저 역시 불과 두어달 전만 해도 그랬거든요. 어쩌다 일을 일찍 마쳐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는 시큰둥해했습니다. 주말에는 저랑 같이 재미있게 놀았는데도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주말에 몇 시간 놀아주고는 아이가 나를 반겨달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저는 아이의 등하원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잘때까지 거의 함께 있습니다. 하원길에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놀이터로 향하죠. 한 시간은 기본입니다. 날이 추워 놀이터에 아무도 없는 날에도 둘이 가서 놀았습니다.
이렇게 두어달 했더니 아이가 저를 찾기 시작합니다. 어린이집에서도 저를 보면 폴짝폴짝 뛰어서 나옵니다. 어린이집에서 집까지 가는 시간은 5분도 안되지만, 걸어가는 동안 마실 물과 간식거리도 챙겨가죠. 아이가 좋아할 수 있도록요.
얼마 전에 제 부모님께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요즘 부자간에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네?"
실제로 그렇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찾는 날보다 아빠를 찾는 날이 점점 늘어가고 있어요. 물론 잠잘 때나 심통이 났을 때 엄마를 찾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입니다. 전에는 저를 전혀 찾지 않았거든요.
당장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얼마 전 카페에서 아주머니들이 이야기 하는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정도 됐나 보더군요. 그 아주머니 말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지금은 엄마를 찾는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가 좀 버거울때가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아이가 온전히 나를 찾아주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불과 몇 년만 더 지나면 친구들 만나느라, 사회생활 하느라 엄마의 자리가 더 줄어들 텐데. 그때는 오히려 지금 시간이 그리워지지 않을까'
뭉클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퇴사를 고민하는 40대 직장인이라면 가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 중 몇시간이나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시나요? 하루는 24시간인데 최소 8시간을 근무하고, 거기에 출퇴근 시간을 더하고, 잔업을 한다면 잠잘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에 가족과 보낼 시간은 더욱 쪼그라듭니다. 정말 서글픈 현실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사는지를 모른 채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특히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쉬움은 더 커집니다. 아이는 커가고 부모와 함께 해야 할 시간은 점점 지나쳐 갑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아이와 등하원 하는 시간. 다시 못올 소중한 시간입니다.